포스테키안

2018 가을호 / 알리미가 만난 사람 / 법과학을 사랑한 과학자 정희선 원장님과의 만남

2018-10-29 130

법과학을 사랑한 과학자 정희선 원장님과의 만남

고등학생 시절, 필자의 책상 벽면에는 ‘진실을 밝히는 과학의 힘’이라는 포스트잇이 항상 붙어 있었다. 이것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흔히 ‘국과수’라고 불리는 기관의 슬로건이다. 요즘은 대중매체를 통해 국과수 관련 내용을 많이 접할 수 있어 독자들에게도 생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번에 필자는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님이시자 현재는 충남대학교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재직하고 계시는 ‘정희선’ 원장님을 만나 뵈었다. 학생들에게 ‘국과수’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선뜻 인터뷰 요청에 응하셨다고 말씀하신 정희선 원장님을 함께 만나보자.

정희선 원장님 이미지

# 법과학자, ‘정희선’

“학생들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이미지를 보통 ‘남성 중심적이다’라고 많이 생각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제가 ‘국과수 원장’이었다고 하면 놀라곤 해요.(웃음) 제가 대학교 3학년 때 국과수 소장님께서 학교에 방문하셔서 강연을 해주셨어요. 저는 그때 굉장히 감동을 받아서 국과수에 가기로 마음먹었어요. 제가 국과수에 들어간다고 하니까 주위에서 많이 말렸었어요. 그 당시에는 여성들이 직장을 다니면 1년이나 2년 안에 그만두었는데 저는 제가 너무 좋아하는 곳에 와서 오랫동안 근무를 할 수 있었어요. 제가 소장으로 일할 때 운 좋게 국과수가 ‘원’이 되었어요. 그래서 나를 소개하라고 하면 국과수 소장도 했고 원장도 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요.(웃음) 전 마약분석을 전공해서 마약분석, 약독물분석 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고 국제법독성학회장도 했었어요.”

원장님께 직접 설명을 들으니 더 대단함이 느껴졌다. 교수님은 소개에 이어 말씀을 덧붙이셨다.

“내가 학생들에게 계속 나에 대해 얘기하는 이유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있고, 꿈이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 나를 버티게 하는 힘

국과수에서 근무하시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셨을 원장님께서 30여 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일하실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했다. 다소 해결하기 힘든 사건들을 직면하시면서 좌절도 하셨을 것 같은데 그런 원장님을 버티게 한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국과수 일은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매번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고 새롭거든요. 또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약물을 찾아내야 하는데, 화합물 몇십만 개를 가져다가 줄이고 줄여서 하나를 찾아내는 그 과정이 굉장히 흥미진진해요. 열심히 찾다가 마지막 하나를 딱 만났을 때 그 기쁨도 정말 커요. 과학하는 사람은 그만큼만 해도 기쁜데 그걸로 범죄가 해결된다는 건 더욱 기쁜 일이에요. ‘내가 한 일이 사회와 국민, 그리고 국가를 위해서 쓰이는구나’를 느끼는 건 또 다른 가치라고 생각해요. 이런 것 때문에 30여 년 동안 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원장님께서는 지난 사건을 회상하시면서 듀스의 김성재씨 사망 사건을 언급하셨다. 직접 집필하신 책과 평소 인터뷰에서 자주 언급하신 사건이라고 하셨다.

“그분은 팔에 주삿바늘 자국이 있어서 당연히 마약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부검을 했더니 마약을 한 사람의 주삿바늘 자국과는 달랐어요. 그래서 위 내용물, 혈액, 소변을 채취해서 약물이 있는지 실험을 진행했어요. 또 하나의 미지 물질과 마주쳤는데, 마약 종류를 다 찾아봐도 마약이 아닌 거예요. 나중에 한 13만 종쯤의 화합물과 비교를 해봤더니 동물 마취약과 일치했어요. 내가 그걸 못 찾았다면 김성재씨가 마약 중독자라고 결론이 내려질 수도 있었던 거잖아요. 내가 한 일이 사망한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다는 게 굉장히 뿌듯했어요. 결국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은 바로 ‘일에 대한 사랑’인 것 같아요. 미지의 물질이 찾아지지 않을 때의 스트레스는 정말 말도 못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하는 일을 사랑했기 때문이에요.”

# 앞으로 걸어갈 길

원장님께서는 대학원에서 과학수사 분야인 법과학, 마약분석, 독성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셨다. 앞으로 원장님께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여쭤봤더니 ‘과학수사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내가 엉뚱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죠?(웃음) 다른 사람들은 이런 생각 잘 안 할 텐데 난 이런 걸 하고 싶어요.” 이어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과학수사를 통해서 학생들에게 과학이 쉽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어요. 지문은 왜 여기 남아있을까, 또 이 지문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다른 사람과 나는 왜 지문이 다를까. 이런 질문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원장님께서는 마지막으로 고등학생들에게 늘 잊지 말고 과학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하셨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원장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나라 법과학에 기여한 사람. 법과학을 아주 사랑한 사람. 그럼 됐죠.(웃음)”

자신의 일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교수님의 환한 웃음이 그 말이 진실함을 한 번 더 느끼게 해주었다. 원장님께서는 원장님과 나눈 많은 대화들을 다 싣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분량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적지 못했지만, 포스테키안 독자들에게 원장님께서 집필하신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보는 사람들>과 <과학하는 여자들>을 추천하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알리미 24기 정세빈 | 무은재학부 1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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