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18 겨울호 / 포스텍 에세이 / 신소재와 꿈을 꾸다

2019-03-12 116

포스텍 에세이 / 신소재와 꿈을 꾸다.

신소재공학과 조교수 오승수

신소재‘의’ 모든 것

“Stone age. Bronze age. Iron age. We define entire epics of humanity by the technology they use. – 구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우리는 시대가 사용한 기술을 토대로 인류의 시대를 정의한다.”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분야의 세계적 선도 기업인 NETFLIX의 CEO이자 Microsoft와 Facebook의 이사진이기도 한 Reed Hastings가 한 말이다. IT 분야의 세계적 거물 리더가 인류 역사 속에서의 소재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시대를 바꿀 혁신적 소재 기술의 필연성을 역설하다니 뭔가 어색하기만 하다. 하지만 곰곰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그 어떤 분야든 새로운 소재의 출현에 의해 혜택 받지 않은 곳이 있었던가? 아니 오히려 그로 인해 분야의 급격한 발전과 새로운 시대의 도래가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1965년 4월의 ‘Electronics’라는 잡지에 실린 풍자 만화는 새로운 반도체 기술이 계속 등장하면 컴퓨터가 급격히 작아져 손바닥에 들어가는 “Handy home computer”도 나오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 당시 개인용 컴퓨터는 고사하고, 초보적 계산만 가능한 공룡만 한 공용 컴퓨터만이 존재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러한 풍자가 어찌 보면 이해할 만도 하다. 하지만 새로운 반도체 소재의 출현과 혁신적 나노 기술의 등장은 기어이 손 안의 컴퓨터, 소위 스마트폰을 모든 이의 손에 쥐어 주는 시대를 결국 열고야 말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는 가까운 미래는 인공지능의 시대이니 이제는 신소재와는 관련이 없는 것일까? 2016년 3월 모두를 숨죽이게 했던 이세돌과의 멋진 바둑 대국을 승리로 이끌었던 최고의 인공지능, 구글의 알파고(AlphaGo)의 실제 정체를 혹시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알파고의 본체는 컴퓨터 약 2000여 대에 해당하는 미국 중서부 지역에 위치한 ‘구글 데이터센터’에 놓여 있는 집채만 한 크기의, 어마어마한 양의 전기를 소모하는 서버이다. “더 작고, 더 빠르고, 더 효율적으로.” 신소재 분야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신경망 소재와 양자 기술을 등장시키고 있고, 기어이 알파고보다 더 뛰어난 인공지능마저 모든 이의 손 안에 한 대씩 쥐어 주는 미래 시대를 도래시킬 것임이 분명하다. 신소재. 그 정체는 새 시대를 불러오는 훈훈한 바람이지 않을까?

신소재‘에 의한’ 모든 것

2002년 광화문 네거리를 가득 메웠던 월드컵의 열기도 어느덧 옛날 얘기가 되어버린 듯하다. 나 역시 사람들과 어울려 건물마다 붙어 있는 대형 스크린들을 통해 월드컵의 감동을 생생하게 느꼈었는데. 그런데 이 월드컵의 시점에서 겨우 몇 년만 더 거슬러 올라가도 내 기억 속의 전광판들은 녹색과 붉은색만을 어색하게 발산하는, 생생한 현장이나 실제 대상의 모습을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색감의 향연장이었다. 그 당시에는 어리기도 했거니와 시대의 변화에 동반하는 기술의 변화라는 것에 어떠한 의문도 품지 않은 채 그저 당연시했던 듯하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총천연색의 완성은 빛의 삼원색 가운데 파란색을 낼 수 있는 고휘도의 발광 물질이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개발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 뿐이던가? 세상의 혁신적 변화는 항상 새로운 소재의 등장과 함께 했음이 분명하다. 지금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고, ATM기나 식당, 공항의 KIOSK|(무인 단말기)의 화면을 두드리고 있는 모습들이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흔치 않은 장면들이었다는 것. 이러한 눈치채지 못한 변화 속에는 이제껏 불투명했던 전극 물질을 뒤로 하고 투명 전극이 새로이 개발된 결과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마도 2019년이면 접히는 폴더블 스마트폰이 시중에 나오리라 예상이 되는데, 전기가 흐르는 플라스틱이란 새로운 개념과 관련 소재의 발견이 없었다면 아직은 요원한 미래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신소재. 덕분에 세상 참 많이 변했구나.

신소재공학과 조교수 오승수

신소재‘를 위한’ 모든 것

나는 박사후연구원 과정 때 지도교수님이신 Harvard Medical School의 Jack Szostak 교수님(2009년 생리의학상)을 포함하여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을 직간접적으로 겪어 보았다. 특히 신소재 분야에 있어서 내가 박사 과정을 마친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Barbara에는 무려 3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한 학과에 포진해 있었다. 그들은 바로 반도체 이질구조를 연구한 Herbert Kroemer 교수(2000년 물리학상), 전도성 고분자를 발견한 Alan Heeger 교수(2000년 화학상), 청색 발광 다이오드를 발명한 Shuji Nakamura 교수(2014년 물리학상)이다. 특히 Heeger 교수님의 경우에는 내 박사 학위 심사위원이자 부지도교수님이시기에 꽤 많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혹은 대화를 통해 항상 느꼈던 것은 ‘불가능’이란 단어의 개념을 정말 잘 모른다는 것이다. 사실 신소재 분야가 그렇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 그것은 항상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개념이기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신소재의 사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에 집중하여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상상한 바를 이루어 내는 열정만이 존재한다. 그들은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힘을 갖고 있었기에 혁명과도 같은 새로운 물질들의 개발로 세상을 기어이 바꾸었으리라. 이에 신소재는 늘 이렇게 외치곤 한다. “Make impossible possible! –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라”

신소재‘는’ 모든 것

흔히 신소재 연구자들은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신소재가 될 수 있다.”라고 얘기하곤 한다. 나는 이 말에 우스개처럼 꼭 토를 달고는 한다. “왜 꼭 내 주변이지? 나는 포함 안되나?”라고 말이다. 나의 지론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그 구성 성분들도 진정 훌륭한 소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난 금속, 반도체와 같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소재가 아닌, 참으로 독특한 소재들을 다룬다. 특히, 인간의 유전자를 이루는 DNA와 같은 핵산을 이용해 ‘합성 항체’, ‘합성 효소’의 개발과 같은 쉬이 떠올리기 힘든 도전적 시도들을 즐긴다.

공교롭게도 공학 분야의 세계적 리더인 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도 DNA, RNA를 연구하는 Robert Macfarlane 교수가 나보다 조금 더 먼저 신소재공학과에 임용되었다. 물론 나와는 연구하는 방향이 참 많이 다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말 놀랍지 않은가? 소재 분야라고 하면 금속, 반도체와 같은 것들을 떠올리던 세상이었는데. 참으로 세상 많이 변했다. 아마도 신소재는 세상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변화’ 그 자체인 듯 하다.

I have a dream, and now is the time

포스텍의 건학 이념을 혹시 아는가? 이를 잘 살펴보면 신기하게도 “…소재산업 관련 연구에서는 세계적인 중심지로 발전하고자 한다.”라고 콕 집어서 신소재 연구를 강조하고 있다. 포스텍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신소재 연구의 가능성을 꿈꿔 왔으며 지금껏 성장해 왔고 앞으로도 성장할 것이다. 혹여나 눈치챘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에세이 구성을 아브라함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따온 김에 에세이 마무리는 또 하나의 명연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링컨 기념관 연설을 빗대어 마치고자 한다.

“I have a dream –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신소재의 연구를 위해 태어난 포스텍이 전 세계 신소재 분야의 중심지로 발돋움하여,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 신물질들의 개발로 우리나라 과학계의 첫, 아니 계속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꿈 말입니다. 그러한 꿈이 이뤄질 시간은 멀지 않았다고 확신합니다. 지금의 우리 모두와 미래의 신소재 과학자 모두가 변화를 즐기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다면, 그 꿈이 완성되어 갈 시간, “Now is the time. – 그 시간이 바로 지금입니다.”

글/ 오승수  신소재공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