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0 여름호 / 포스텍 에세이

2020-07-28 615

포스텍 에세이 / 삶 속의 제어공학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과관계’라는 단어를 수없이 듣게 됩니다.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결과에는 그에 해당하는 원인이 항상 존재한다는 의미이지요. 이 의미를 우리들의 삶에 적용하여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해 본다면, 오늘의 결과는 내일의 원인이 될 수 있기에 이러한 ‘인과관계’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루프 Loop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과관계의 반복 과정을 제어 공학에서는 피드백 시스템 Feedback Systems이라 부릅니다. 보통 피드백 시스템이라는 단어는 고등학교 생물에서 공부하는 혈당량 조절에서 처음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잠시 이 내용을 들여다봅시다. 체내의 혈당량이 이자섬 세포에서 측정되어 간뇌의 시상하부로 전달되고, 간뇌의 시상하부는 그 값을 기준으로 혈당량을 낮춰야 할지 높여야 할지를 판단합니다. 이에 따라 인슐린 혹은 글루카곤의 분비 양을 조절하라는 명령을 이자에 전달하고, 이러한 명령을 이자가 수행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어 궁극적으로는 신체의 혈당량이 안정적인 수치에 도달하게 되며, 이 과정 중 어느 한 곳에서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당뇨병과 같은 성인병에 걸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제어공학에서 이야기하는 일반적인 피드백 시스템의 동작 과정을 위의 혈당량 조절 과정에 빗대어 설명하겠습니다. 우선은 우리가 제어하고자 하는 대상을 플랜트 Plant라 부르며, 이에 대한 정보를 감지하여 전송하는 센서 Sensor가 존재해야 합니다. 또한 이러한 센서로부터 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플랜트에 어떠한 동작을 미쳐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제어기 Controller가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제어기가 결정한 명령을 그대로 플랜트에 수행하는 구동기 Actuator가 존재하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플랜트는 인체의 혈당 시스템이 되겠으며 센서는 혈액으로부터 혈당량을 감지하는 이자섬 세포이고, 간뇌의 시상하부는 제어기, 그리고 이자는 구동기라 할 수 있습니다.
피드백 시스템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어 공학에 처음 적용한 것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연계의 모습을 모방하여 공학의 다양한 분야들이 발전해 왔다는 데에는 대부분의 학자가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어 공학에서도 자연계에 영감을 받아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제어 공학이 생물학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제어 공학은 전자공학의 여러 분야에서 가장 수학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학문입니다.

위의 예시에서는 혈당량이 높고 낮음을 기준으로 인슐린 혹은 글루카곤을 분비하느냐의 단순한 과정으로 설명하였지만, 실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산업의 다양한 시스템은 더욱 복잡한 미분 방정식 Differential Equation으로 표현이 됩니다. 예를 들어, 무인 항공기가 일정 고도를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비행하기 위한 제어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무인 항공기가 하늘을 날고 있는 과정은 베르누이 방정식을 바탕으로 표현할 수 있고, 압력의 변화 및 날씨의 변화와 같은 예측 불가능한 다양한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렇게 외부로부터 예상치 못한 방해요소가 나타났을 때 항공기의 고도를 일정하게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제어 공학에서는 이러한 안정성을 만족시키기 위한 제어기를 어떻게 설계할지를 수학적으로 다루게 됩니다.

흔히 수학은 노력보다는 머리가 비상한 학생들이 잘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 1~2학년의 수학까지는 어느 정도의 선행학습으로 커버할 수도 있는 간단한 경우가 많기에 실제로 머리가 비상한 학생들이 단기간에 깨우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어 공학도 관련된 수학적 지식을 공부하고 논리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학생들이 저에게 머리가 비상한 편이 아닌데 제어 공학 연구를 시작해도 괜찮을지 문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단기간에 좋은 결과들이 나오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에서 나오는 염려이기도 한 것 같고요.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연구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하루아침에 개발하여 세상을 놀랍게 하는 것보다는 동료 연구자들이 잘 쌓아 올린 석탑 위에 내 이름이 새겨진 벽돌 하나를 천천히 올리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는 게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

한편 개인적으로 대학 교육의 본질도 피드백 과정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는 강의를 통하여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은 이러한 정보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잘 모르는 부분이나 궁금한 점은 교수에게 질문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갑니다. 즉, 지식을 전달하는 교수와 지식을 받아들이는 학생들 간의 활발한 피드백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때 비로소 학생들은 주어진 내용을 ‘제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교육의 본질이 달성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요즘에는 이러한 피드백이 ‘잘’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몇 년간 경험해 본 바로는 학생들이 주로 질문을 하러 오는 것은 시험 직전에 본인이 공부한 것이 확실한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거나, 본인의 점수에 의문이 생겼을 때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혹은, 정말 학문적으로 호기심이 생겨 질문하고 싶다가도 교수와 학생 간의 보이지 않는 벽이 너무 높게 느껴져서 차마 교수에게 다가오기 힘들어 포기하고 혼자 공부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전자의 경우는 안타깝지만 어느 정도 학생의 심정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저를 비롯한 교수님들이 반성해야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제어 공학에서 다루는 산업 시스템만 유기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도 굉장히 유기적이어서 보이지 않는 벽에 의하여 피드백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교수와 학생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궁극적으로는 대학의 본질적인 존재 가치인 교육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는 안타까운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저 스스로 교수라는 두 글자에 사회가 기대하는 무게를 잘 견디고 수행하고 있는지, 학생들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먼저 점검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자신의 몸을 플랜트라 생각하고 자신의 마음을 제어기라고 여긴다면, 예기치 못한 주변 상황의 변화에 대해서도 항상 꾸준하고 안정적으로 본인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제어기를 지니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사회를 밝게 만들어 가는 모습이 아닐까요?

 

전자전기공학과 교수 김정훈